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

남자들이 나이가 많던 적던 나이 어린 여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통용되는 상식입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제시하는 제 의견은 다분히 일반적인 관점의 이야기라는 것을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여성분들은 남자들이 외모적인 이유 때문에 나이 어린 여성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남자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고요. 물론 외모적인 요소도 어느정도 작용하겠지만, 저는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은 태생적으로 존중과 존경을 먹고사는 동물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부족간의 세력 다툼과 권력을 탐하는 싸움은 거의 남자들의 몫이었습니다. 힘을 겨뤄서 권력을 쟁취하고 밖으로 나가 사냥을해서 먹을 것을 쟁취해 오는 남자들의 전통적 습성과 본능 때문에, 남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우러러봐주고 존중해주며 추켜세워줄 때 가장 동기부여가 됩니다. 자신을 존중해주고 존경해주는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나이가 어린 여성은 상대적으로 세상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린 여성이 더 나이가 많은 남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경우 남자에게 물어보고 의지하는 것이 많아지고, 별거 아닌 일에도 상대방 남자가 하는 일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감탄과 리액션을 하게 됩니다. 남자들은 바로 그런 것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버리는 것 같습니다. 긴 생머리의 청순한 여성상을 좋아하는 것과 소외 “백치미”를 가진 여성을 좋아하는 이유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여성의 나이가 많고 적고는 그렇게 큰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 어떤 남성이든, 그 남자에 대해 또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존중해주고 칭찬해주며 감탄해준다면, 남자들은 그런 여성에게 호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

미드나잇 인 샌프란시스코

*주의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1년 작품으로, 약혼녀와 파리로 여행온 한 미국인 소설가가 겪는 헤프닝을 그린 일종의 판타지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소설가 “길”은, 자신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댄스 파티에 가겠다는 약혼녀를 보내고 혼자 파리의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다가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러다 자정을 알리는 종 소리와 함께 자신의 앞에 한 오래된 택시가 서게되고, 안에 탄 사람들은 길에게 차에 타서 자신들과 같이 가자고 합니다. 그들과 같이 간 길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항상 동경하며 “golden age”라고 생각했던 1920년대의 파리로 가게 됩니다. 그 시대에 파리에 실제 살았던 헤밍웨이, 피카소, T.S. 엘리엇, 살바도르 달리 등의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들을 실제 만나서 이야기하게 되고,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애드리아나”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 시대에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애드리아나와 길은 다시한번 1890년대의 파리로 가게 되는데, 그 시대를 동경했던 애드리아나는 1890년대에 남아 살겠다고 합니다. 길은 1920년대를 동경해 왔는데, 막상 그 시대에 살았던 애드리아나는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길은 그 것을 보고 결국 golden age는 자신이 현재 살고있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2010년대의 현실의 파리에서 새 사랑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저는 1920년대에 그렇게 전세계의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파리에 모여 살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렇게 낭만적인 시대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너무 매력적이었고, 저 자신도 실제 파리 여행중에 혼자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가 저에게는 너무나 멋진 판타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다가 만약 우리가 살고있는 이 2010년대에, 1920년대의 파리와 같이 전세계의 문화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꼽으라고 하면 어디가 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바로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인 실리콘 밸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시대에 세상을 바꾸고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바로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IT, 스타트업 및 모바일 붐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100년 쯤 후에는 사람들이 “나도 2000년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보고싶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서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마크 주커버그 등 세상을 바꾼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시대이고, 100년 쯤 후에는 이 분들이 더 크게 존경을 받는 “위인”들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제가 실리콘 밸리로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있는 이유도, 바로 이 시대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그 곳에서 제 생애의 전성기를 보내고 싶어서 입니다. 먼 훗날, 저도 그 “위인”가운데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 좋겠죠.

 

미드나잇 인 샌프란시스코

팀 버튼과 창의력의 삼각형

얼마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팀 버튼 전을 보고 왔습니다. 원래 팀 버튼 감독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해서 기대를 하고 있었고 오픈 첫 날에 가서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회를 보고 느낀 점은, 팀 버튼 감독은 정말 뛰어난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그 것을 표현할 줄 아는 재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영화와 그림 등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는 그런 팀 버튼 감독의 재능이 정말 부럽다고 느꼈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작품들을 보면서 창의적인 작가가, 또 그의 작품들이 지녀야할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고민을 해본 결과, 3가지 특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독창성 (Originality)

독창성은 그 사람의 작품에서만 느껴지는 남들과 다른 특성입니다. 이 특성이 뛰어난 작품은 기존의 틀을 깨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독창성은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특이한 경험을 가진 사람, 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특성입니다. 팀 버튼 감독도 어린시절에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이라서, 혼자 공동묘지에 가서 그림을 그리며 놀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지금 처럼 기괴하고 특이한 상상을하고, 그런 그림과 영화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입니다.

2. 보편성 (Universality)

보편성을 갖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이 특성은 독창성과 반대의 위치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대중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작가가 보편성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통 “재미있다” 라고 하는 영화나 창작물은 이 보변성이 뛰어난 작품인 경우가 많습니다.

3. 일관성 (Consistency)

일관성은 독창성과 보편성으로 표현된 그 작가의 특성을 계속 유지해 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일관성을 갖추려면 작가가 자신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관성을 유지하며 작품 활동을 하다보면 대중들이 그 스타일 만으로 작가를 인식하게 되면서 팬층이 생기고, 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신뢰성이 쌓이게 됩니다.

팀 버튼 감독이 지닌 특성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나올 것 같습니다.

팀 버튼은 독창성과 일관성이 아주 뛰어납니다. 남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고, 이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해온 결과 그의 영화는 예고편이나 포스터만 봐도 “아 이 영화는 팀 버튼 영화구나”라고 바로 알 수 있죠.

반면에 보편성은 조금 떨어지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위손” 같은 몇몇 작품들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 크게 흥행할 수 있었던 반면, 많은 그의 작품들은 예술적으로 인정은 받았지만 너무 그만의 세계에 갖혀 있어서 대중적인 흥행에는 실패했었죠.

저 자신을 나름대로 평가해본다면 팀 버튼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과 일관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보편성이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앞으로 좀 더 보편성과 독창성의 균형을 잘 맞추고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 일관성 있게 작품이나 디자인 활동을 해나간다면 언젠가 저도 제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팀 버튼과 창의력의 삼각형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어젯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제치고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에서 저를 포함하여 제가 팔로우하는 거의 모든 분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우리나라 전체를 대변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그 것이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착각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과정을 지켜보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우리나라의 이념적 양극화가 너무 심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운 저의 아버지나 장인어른과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평소에는 말이 잘 통하지만 정치 이야기만 하면 제 생각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이유중에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실패했던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두 정부 모두 잘한 점도 있겠지만, 노무현 정부 때 성장의 둔화로 저희 아버지 세대의 많은 분들은 너무 큰 실망을 하셨고, 또 저와 같은 젊은 세대들은 이명박 정부의 억압적 통치에 너무 큰 실망을 한 것이 그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국민들에게 기대를 줄 수 있는 정당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민주당은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박근혜를 지지했던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현 정권은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민주통합당을 지지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전쟁을 겪었던 노년 세대들은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박정희에 대한 향수까지 더해지고, 또 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희망에 열광했던 20대들의 안철수의 사퇴로 인한 실망은 지난 대선보다도 낮은 2-30대 투표율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것을 대한민국 전체로 일반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지역색등의 요소들도 있고 젊은 층에서도 보수를 지지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이념적 양극화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안철수 전 후보가 내세웠던 통합의 새 정치 일까요? 저도 안철수 후보가 나왔을 때 그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너무 이상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정당이 없이 이기는 것도 거의 불가능 했을테고요. 다른 선진국들의 예를 봐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가 없이 이상적인 통합의 당이 이끄는 나라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이번 대선 이틀전인 17일,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민주통합당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 두 분의 정치 원로께서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지지자 토론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 두분의 토론이야 말로 정치계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못 들으신 분들을 꼭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토론에서 윤여준 위원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런 얘기를 합니다. 정치학자들이 민주주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 그러죠. 끊임없이 민주주의는 보완해 나가야 된다는 거죠. 완성된 상태가 있는 게 아니다, 저는 통합이라는 것도 국민통합이라는 것도 어떤 완성된 상태가 있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찾아가는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저는 그렇게 보거든요. 그러려면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중해야 되죠. 따라서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됩니다. 겸손하게. 또 자기 말도 겸손하게 하고 그래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자신도 상대방에게 설득당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런 태도가 없이는 통합을 할 수가 없죠.”

저는 이처럼 “민주주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번 선거도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느 한쪽이 지고 어느 한쪽이 이겼다고 보기보다, 좀 진부한 말이지만 결국 모두가 승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얻을 것은 그 “과정”에서 모두 얻었기 때문이죠. 안철수의 등장과 사퇴도,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노력도 전부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보수 세력도 국민들이 정치 통합에 대한 염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집권층의 비도덕성을 국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되었지요. 저는 나꼼수같은 방송이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보가 집권을 하면 보수진영의 나꼼수가 있어야하고, 그 것이 올바른 정치 참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보수가 집권하든 진보가 집권하든, 그 대결 과정에서 배운 국민들의 염원을 끊임없이 정치에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는 이런 점들을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이유도 박근혜 후보보다는 문재인 후보가 이런 “과정을 통한 통합”을 더 잘할 수 있는 후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누가 알겠습니까. 만일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되었더라도 저희 아버지세대의 걱정처럼 민주통합당의 일부 타락한 국회의원들에게 휘둘려서 노무현정부와 비슷한 실수를 하게되었을지도 모르죠. 선거에 대한 실망을 위로하기 위해 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봅니다. 집권층은 결국 권력층이고, 보수와 진보 둘 중 하나가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층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면, 내가 속한 쪽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더 멋있지 않겠냐고요. 예수님께서 권력을 거부하고 약자의 편에 서섰던 것 처럼 말이죠. 앞으로 5년,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처럼 끊임없이 소통하고, 참여하고, 감시해야겠습니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지니어스가 알려준 애플의 디테일

지난 2012년 추수감사절, 미국에 있었던 저는 같은 주 금요일날인 블랙 프라이데이에 생전 처음 쇼핑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매년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선물을 쇼핑하는 날로, 많은 상점들이 특별 할인을 하는 날입니다.

선물을 사기위해 애플 스토어에 들른 저는 나이키+ 악세사리를 집어들었습니다. 지니어스(애플 스토어에서 안내와 설명을 해주는 직원을 말합니다.) 중 한명이 결제를 해주기 위해 들고있던 아이폰으로 바코드를 스캔했는데, 바코드가 잘 스캔이 안되더군요.

그 때 그 직원이 갑자기 저에게 물었습니다. “Jony Ive”를 아냐고요. 애플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애플의 디자이너인 조니 아이브를 당연히 알고 있었고, 안다고 대답했죠. 그러자 그가 그러더군요. 조니 아이브가 애플 제품의 모든 박스에 있는 바코드를 이번에 새로 디자인했는데, 기존보다 작게 디자인을 해서 스캔이 잘 안된다고요.

저는 애플의 거의 모든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조니 아이브가 박스에 있는 바코드 까지 디자인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애플이 디테일을 중시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있었지만, 제품 박스의 바코드 스티커까지 최고 디자인 책임자가 신경쓰는 회사는 애플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것이 바로 세계 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겠죠.

최근 스티브 잡스 사후에 애플의 혁신이 정체되고 있어 애플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이런 디테일을 중시하고 기본에 충실하는 애플의 장점이 오래 유지되어 다들 회사들에게 본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니어스가 알려준 애플의 디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