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건축학개론’ – 환타지와 현실사이

 주의 : 이 감상평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본 후에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예전에 한번 음악과 추억의 밀접한 연관관계에 대해 글을 올린 적이 있었을 정도로, 나는 음악이 추억을 되살리는데 굉장히 효과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이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는 추억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음악을 잘 사용한 영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의 힘이 대단한 영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김동률이 “이젠~”으로 시작하는 ‘기억의 습작’을 부르기 시작할 때는 가슴에 어떤 물감이 확 퍼지는 듯한 황홀한 느낌을 받았다.

좋은 영화의 미덕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좋아하는 영화도 다르다. 현실세계에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펼침으로써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영화도 있고, 극히 현실적인 공감대를 느끼게 해줌으로써 삶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도 있다.

 이 ‘건축학개론’은 뭔가 그 둘 사이에 있는 영화 같다. 30대 후반 정도의 남자들이 모두 다 가지고 있을 만한 추억을 디테일하게 끄집어 내 줌으로써 웃음과 공감을 주는 극히 현실적인 영화 같지만, 동시에 그 남자들이 모두 가지고 있을 만한 환타지를 만족시켜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영화의 주인공인 승민이는 여자들에게 인기있는 타입도 아니고 극히 평범한 대학 신입생인데, 수지나 한가인 같은 미모의 여학생과 단짝이 되고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을 확율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여학생이 1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후에 첫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남자를 다시 찾을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이 영화는 실제로 건축을 전공한 이용주 감독이 오랫동안 각본을 준비한 영화인 만큼, 지극히 남자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 느껴진다. 통계적으로 볼때 남자들은 사랑을 할때는 불만이 많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쉽게 잊지 못하고, 그렇기에 첫사랑의 추억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자들은 대게 사랑을 할때는 올인하다가도 헤어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모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사실에 비추어 볼때 여자들이 실제 이 영화의 주인공 서연과 같은 행동과 생각을 할 확률은 드물고, 이 ‘건축학개론’은 모든 남자들이 한번 쯤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만한 환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극중 서연은 미모의 여성이고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돈많은 의사와 결혼한 여성임에도, 그 남편과 이혼의 아픔을 겪고 홀로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살아가는 설정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돌보아주고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 또한 아픔을 가진 여성에 대한 연민을 느끼는 남자들의 심정을 충족시켜주는 환타지적인 설정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다. 90년대의 추억의 공감대를 풀어냄으로써 많은 웃음을 주고, 여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잔잔한 감성으로 감동을 준다. 특히 30대 남성들이라면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아련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자들이 자신이 사랑했던 한 사람을 그리워 한다면, 남자는 자신이 한때 느꼈던 감정과 그 추억을 더 그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승민과 서연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승민의 추억에 관한 영화인 것 같다.

단평들 : 나도 바닷가에 집짓고 살고 싶다. 김동률은 ‘기억의 습작’을 고등학생 때 쓰다니 천재다. 이제훈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정말 좋고 재수생 친구 너무 좋다 ㅋㅋ. 수지와 한가인에 대해서는…노 코멘트 하겠다. ㅎㅎ 연기는 둘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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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 – 환타지와 현실사이